재료: 종이, 모터, LED, 철, 플라스틱
규격: 1500×1500×1500
전시장소, 일시: 단원미술관, 2021.12.-2022.02.
<Flower>는 자연계에서 발견되는 emergence 현상을 종이접기 형태 제작방식에 전기 기계장치를 접목하여 표현하였다.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순환하는 구조물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친절, 봉사, 사랑이 모여 꽃처럼 끊임없이 아름답게 피고 지는 우리의 삶, 인류의 삶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작품은 하나의 소재가 작은 조각들로 나누어져 여러 패턴들을 이루고 있지만 하나의 구조로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각 면에 반사되는 다채로운 빛의 효과는 사운드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개미들이 거대한 개미집 전체의 모양을 모른 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그로 인해 엄청난 수의 개미들이 살 수 있는 개미집이 만들어지듯이, 우리 삶 속 각자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작은 친절, 책임감과 같은 사소한 인류애와 같은 사랑이 모여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만들어가며 인류의 역사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우리는 새로운 포장의 방식처럼 새로운 접기의 방식을 발견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라이프니츠적이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접기, 펼치기, 다시 접기이므로.”
– 질 들뢰즈
문혜진
공연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 음악이 시작되며 빛과 움직임이 나타난다. 붉음에서 푸름까지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을 타고 변주되는 빛의 변화는 광원을 둘러싼 오브제의 움직임에 조응한다. 매 순간이 다르게 보이는 형형색색의 패턴의 향연을 넋 놓고 바라보다 관객은 문득 반사판이라 할 수 있는 오브제의 구조에 눈이 간다. 눈 앞에 펼쳐지는 현란한 색채의 안무가 빛을 반사하는 홀로그램 종이 구조물의 운동으로 초래된 결과임이 인지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키네틱 오브제의 운동에 몰입한다. 생각보다 운동은 단순하다. 펼쳐졌다 다시 접히는 움직임이 반복된다. 하지만 접힌 면들의 모양과 각도, 주름의 층들이 중첩되어 있어서 단순한 움직임은 단순하지 않게 보인다. 시각적으로 다채로운 형상 또한 빛이 접힌 면들에 얼마나 닿는지, 닿을 당시 면의 각도가 어떠한지에 따라 반사의 양상이 달라지며 발생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구조를 이해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신기하고 흥미롭다. 홀린 듯 반복해 본다. 몇 차례 루핑을 하고 나니 새로운 것이 또 보인다. 이것은 완벽한 반복이 아니다. 광원의 색조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파르스름하게 축소되는 우주와 붉게 물들며 사그라지는 우주. 외시적 운동의 동일성 속에서 태동하는 차이의 반복이다. 그 어떤 순간도 같지 않다. 그렇게 우주의 시원과 소멸의 서사시를 바라본다. 차이는 역동적인 시공간을 창조하는 순수한 운동으로 펼쳐진다.
ADHD(김영은, 김지하)의 신작 <Flower>(2021)는 자연계의 구조와 패턴을 키네틱 종이접기 오브제로 표현하는 <Origami Universe> 연작의 일환이다. 전술했듯 작업의 구조는 단순하다. 변하는 것은 단 세 개다. 빛의 색조, 홀로그램 종이의 접고 펴는 운동, 소리. 이들은 서로 얽히며 동기화되어 하나의 우주를 형성한다. 작업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마치 꽃봉오리가 솟아올라 화려하게 만개하고 조용히 스러지듯, 빛과 움직임, 소리의 군무는 공감각적으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합주를 이룬다. 이를 지켜보는 것은 만화경으로 우주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듯한 감흥을 자아낸다. 미시 세계를 통해 거시 세계의 일단을 목도하는 경이라 할까. 그런데 이 작업의 묘미는 표면 못지않게 그 밑의 구조에 자리한다. 이미지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원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구조물의 운동은 펼쳤다 접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왕관 모양으로 접힌 세 겹의 면들이 접혔다 펴지면서 빛이 닿는 면적과 각도가 매번 달라진다. 이에 따라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 색채가 표현되는 영역이 계속 변화한다. 즉 우리가 보는 이미지는 펼쳤다 접는 운동으로 달라지는 사각의 면들에 반사된 빛의 환영인 것이다. 단순한 단위인 사각면들이 간단한 운동 원리로 복잡한 패턴을 이루는 현상은 자연계의 원리와도 같다. 리아스식 해안, 고사리 잎, 창문에 자라는 성애 등 주변에서 흔히 관찰되는 자연계의 현상은 단순한 기본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며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원리로 형성된다. 생명체와 우주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무수히 작은 단순한 원자들의 조합으로 복잡한 유기체인 생물과 우주가 탄생한다. 단순한 복잡성(simply complexity)으로 불리는 이 원리는 실재하는 세계의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질서와 연관된다. 무질서 속에 내재된 질서와 질서에서 양산되는 무질서는 우주의 작동 원리다…
…<Origami Universe> 연작은 단순한 법칙에 따라 최소 단위들이 반복되며 복잡한 형태를 이루는 복잡성의 원리를 가장 원론적으로 적용한 작업이다. 복잡함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콤플렉스(complex)는 어원적으로 접기와 연관된다. ‘com’은 복수를 뜻하는 접두어고 ‘plex’는 접다를 뜻하는 ‘plicare’에서 변주된 어미다. 따라서 ‘complex’는 두 번 이상 접어서 복잡하다는 것을 뜻한다. 반대로 단순함(simple)은 한번(sim) 접었음(plex)을 가리킨다. 접기는 “단 하나의 세계로부터 많은 존재들이 태어나는 심원한 비밀을 보여준다.” 접기가 존재의 일의성과 형상의 다양성을 연결하는 놀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접기라는 행위가 분화와 연결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다. 접기는 “두 부분을 나누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서로 차이나는 것으로 관계”지우는 것이다. “접힌 선 또는 주름은 차이가 작동하는” 지점을 표시한다. 접으면서 끊임없이 하나에서 둘이 형성되고, 접힌 지점과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형상이 무한히 산출된다. 특히 구조적으로 의미심장한 것은 펼침과 접기를 반복하면서 안과 밖이 계속 뒤집힌다는 점이다. 내부가 외부가 되고 외부가 다시 내부가 되는 구조물은 우주의 메커니즘을 체현한다. “바깥은 고정된 경계가 아니라, 연동 운동에 의해, 안을 구성하는 주름과 습곡들에 의해 자극받는 움직이는 물질이다: 안은 바깥과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정확히 바깥의 안쪽이다.” <Flower>에서 바깥은 안과 상호작용하는 바깥에 그치지 않고 문자 그대로 안이 된다. 이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흘러가는 우주의 순환에 다름 아니다. 팽창과 수축이 동시에 발생하고, 탄생과 죽음이 맞물리며,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우주의 원리는 <Flower>에서 다시 한번 반복된다. 이것은 곧 프랙탈이다. 부분이 전체의 구조/모양을 되풀이하는 자기 유사성이다. 마치 블랙홀처럼 자리하는 텅 빈 중심은 무에서 발산하는 무수한 발현들이 되돌아갈 공(空)과도 같다. 아무것도 없음은 가득 참과 다르지 않으며 가득 참은 비워짐의 이면이다.
<Flower>는 순환과 흐름이라는 생명의 원리를 형상화한다. 꽃이 피고 지며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는 일상의 순환이 반복되며 우주는 흘러간다. <Flower>는 정적이고 소박하지만 실상 그 어떤 전작보다 근원적이고 강력하다. 과거 ADHD의 작업들은 관객의 몸이 개입되며 가상의 공간감이 창출되거나 공간적 인지가 휘는 대형 미디어 설치가 많았다. <Light-Space-Medium> 연작이나 <Stretch> 등의 작업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작업 역시 작은 부분들이 상호작용하여 끝없이 변화하는 순환의 원리를 담고 있지만, 유와 무가 한 몸을 이루는 본질적인 생성의 법칙보다 끝없이 변화하는 빛이라는 현상에 보다 집중한 감이 있다. 반면 <Origami Universe> 연작은 종이 접기와 이를 구동시키는 모터라는 단순한 아날로그 장치를 통해 스스로의 작동 방식 내부에서 우주의 구조를 물화한다. 관객은 장치에 개입하지 않고 종이 접기가 드러내는 우주의 비밀을 조용히 목격한다. 이 과정은 외견상 정적이고 수동적으로 보이나 실상 내적으로 격렬하고 능동적이다. 마치 옵아트(op-art)처럼 현란하게 무한히 변주되는 색채의 변화가 관객의 인지를 사로잡아 몰입의 효과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이미지의 환영은 빛이 반사면과 조응하며 만들어낸 순수한 시각적 현상이나, 갖가지 면이 만들어내는 색채의 패턴은 나의 존재를 잊고 심연의 심포니로 빨려 들어가는 세계와 나의 합일을 창출한다. 이러한 조응의 순간은 부분과 전체의 역동적인 내부 작용(intra-action)이다…